1. 들어가며
경기도 소재 K시에서 아파트 신축사업을 진행하다가 파산한 지역주택조합이 있습니다. 저는 4년전부터 해당 조합과 조합원들을 대리하여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모두 승소하였으나,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위한 추가적인 절차가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 진행 과정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쟁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사업계획승인도 받지 못하고 좌초된 지역주택조합에 양도할 사업권이라는 게 과연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사업권은 법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였습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중간에 좌초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위 쟁점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지는 쟁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본 글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사실관계의 요지
(실제 사건의 사실관계를 일부 변형하고 단순화함)
A조합은 K시로부터 지역주택조합 설립인가를 받고 10여년간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결국 사업은 좌초되었고, 담보신탁한 사업부지에 대해서는 대출금 미변제에 따른 공매절차가 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매절차를 통해 사업부지를 매수할 것을 계획 중이던 B사는 A조합과 '사업참여계약'을 체결하고, 조합의 기존 사업성과물에 기초하여 직접 자신이 개발사업을 추진한 후 조합에 이익금을 정산해 주기로 약정하였습니다. 그러나 B사는 얼마후 이를 위반하고 '사업권'을 대형 건설사인 H사에 양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B사와 결탁한 조합장은 조합 총회도 거치지 않고 조합장 지위에서 위 '사업권 양도계약'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 후 H사는 공매절차에서 조합의 사업부지를 매수하여 새로운 아파트 신축사업을 추진하였고, A조합은 사업권 양도 당시 B사 및 H사에 약정한대로 조합을 '해산'하였습니다.
3. 쟁점(사업권의 존부와 의의)에 대한 검토
이하 내용은 제가 수행한 소송에서 법원의 석명준비명령에 따라 제출한 준비서면 내용을 블로그 형식에 맞게 편집한 것입니다. 아래 서술에서 "이 사건 조합"은 A조합, 그리고 "피고"는 사업참여계약의 당사자인 B사를 지칭합니다.
이 사건 조합이 K시로부터 이 사건 사업부지 내 지역주택조합으로 설립인가를 받기는 하였으나, 주택법상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엄격한 법적 의미에서 "이 사건 조합에게 사업인허가권 등 ‘권리’가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라면, 그러한 권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 조합은 공매 대상 토지인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주택건설사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관할관청인 K시장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주택조합이라는, 명백한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차피 사업계획승인도 획득 못한, 더군다나 이제 사업부지까지 공매로 제3자에게 넘어갈 상황에서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설립인가를 받은 주택조합’이라는 지위가 과연 ‘법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하는 설립인가 받은 주택조합이라는 법적 지위를 가진 이 사건 조합의 ‘존재’ 및 그 조합이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진행해온 이 사건 사업과 관련한 ‘역사’ 내지 ‘결과물’ 은 이 사건 조합이 아닌 다른 자가 이 사건 사업부지 일대에서 개발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장애 요소였으며, 특히 단순히 ‘사실상의 장애’가 아니라 실질적인 ‘법적 장애’로 작용하였습니다.
구 주택법령상 관할관청은 주택조합 설립인가 시 당해 조합주택건설예정지가 이미 인가를 받은 다른 주택조합의 조합주택건설예정지와 중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 사건 사업부지에 이미 K시장으로부터 주택조합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이 사건 조합이 존재하는 이상 이 사건 사업부지를 사업예정지로 하는 다른 ‘주택조합’의 설립인가 및 사업계획승인은 불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 사건 조합의 해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피고는 위와 같은 제한은 ‘주택조합’ 설립인가에 관한 제한일 뿐이므로, 이 사건 조합의 존재 등이 ‘주택조합’ 이외에 다른 사업주체가 주택건설사업을 하는 것까지 법적으로 제한하지는 못한다는 취지로 주장합니다.
위 ‘중복된 주택조합 설립인가 제한’ 자체는 ‘주택조합’ 아닌 다른 사업주체의 주택건설사업에 법적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10년 넘게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주택건설사업을 진행해 온 이 사건 조합의 존재는 당시, ‘주택조합’ 아닌 다른 사업주체에 대해서도 위 ‘중복된 주택조합 설립인가 제한’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법적 장애로 작용하였습니다.
우선, 피고나 H사 등과 같은 다른 사업주체가 ‘지역주택조합’ 방식이 아니라 ‘일반시행방식’으로 이 사건 사업부지에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H사 등이 그러하였듯) 이 사건 조합에 대한 설립인가 관할관청과 동일한 관할관청인 ‘K시(장)’에 의한 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 함)에 따른 지구단위계획구역지정 및 계획 수립 ② 주택법에 따른 사업계획승인 등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위 ① ‘국토계획법’상의 ‘지구단위계획구역지정 및 계획 수립’은 그 법적 성격이 ‘행정계획’으로서 행정청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되고(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9두56135 판결) ② 주택법상의 ‘사업계획승인’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행정청의 재량행위에 속하므로, 이러한 승인을 받으려는 주택건설사업계획이 관계 법령이 정하는 제한에 배치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그러한 제한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공익상 필요가 있으면 처분권자는 그 승인신청에 대하여 불허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5두13315 판결).
이제 이 사건으로 돌아와서, 당시 피고 또는 H사 등이 그 소유권을 취득하여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하고자 하였던 이 사건 사업부지의 당시 상황을 보겠습니다.
ⅰ) 이 사건 조합이 이 사건 사업부지에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하려는 주택조합이라는 ‘법적 지위’를 취득한 것은 2004. 5. 17.이고 이 사건 사업부지에 대한 공매절차가 개시된 것은 2015년 5월경입니다. 즉 이 사건 조합이 설립인가 받은 주택조합의 지위에서 (예비)조합원 모집, 시행대행계약 체결, 시행대행사를 통한 대출 및 토지 매입, 그리고 이를 위한 사업부지 담보신탁 등 이 사건 사업을 위한 작업을 해 온 기간만 하더라도 무려 11년이었습니다.
ⅱ) 그리고 관할관청인 K시장은 이 사건 조합이 설립 후 수년동안 사업계획승인을 획득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설립인가를 취소하지 않고, 이 사건 조합이 주택조합으로서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계속적인 사업(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용인하였습니다.
ⅲ) 그 결과 1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K시 관할의 이 사건 사업부지와 관련하여 이 사건 조합, 기존 조합원들, 새로운 (예비)조합원들, 매도인들, 시행대행사, 시공사, 대출금융기관(대주단), 신탁사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생겼고, 그들 사이의 법률관계 및 이해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ⅳ) 특히 그 이해관계자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130여명의 조합원, 예비조합원, 매도인 들은, 만약 이 사건 조합이 더 이상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개발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다른 사업자가 사업을 진행하게 될 경우,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유 부동산을 이 사건 사업을 위하여 제공하고도 한 푼의 대가도 지급받지 못한 채 부동산 소유권만 상실하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것이었습니다.
ⅴ) 이러한 상황에서 K시가 공매절차에서 사업부지를 새로 취득한 자를 위하여 무턱대고 지구단위계획구역지정, 사업계획승인 등을 해 줄 경우 앞서 밝힌 조합원 등의 막대한 손해 발생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각종 민원, 법적 분쟁이 야기될 것이 명약관화하였고, 이로 인하여 이 사건 사업부지에 대한 주택개발사업은 다시 또 장기간 고착상태에 빠지게 되어 결국 K시의 지역개발, 주택환경개선에 악영향을 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K시로서는, 이 사건 조합의 ‘존재’ 및 그 조합이 10년이 넘게 진행해온 이 사건 사업과 관련한 ‘역사’ 내지 ‘결과물’이 초래할 문제를 제거 또는 최소한 완화시킬 조치(안전장치)가 없이는, 이 사건 조합 아닌 다른 사업자에 대한 사업계획승인 등 처분을 해주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조치란 다름아닌 ‘이 사건 조합의 해산 및 사업 포기, 그리고 새로운 사업자에 의한 사업진행에 대한 동의’였습니다. 실제로 H사 등이 이 사건 사업부지 취득 후인 2017. 4.에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및 계획수립안’을 변경하는 취지의 주민제안을 한 것에 대하여 이 사건 조합의 존재를 이유로 반려처분을 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K시가 H사 등에게, 이 사건 사업부지에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앞서 원고가 말한 일정한 조치, 즉 ‘이 사건 조합의 해산 및 사업 포기, 그리고 새로운 사업자에 의한 사업진행에 대한 동의’가 선행되어야 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K시가 이러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점은, 앞서 밝힌 행정청에게 상당히 넓은 재량권이 인정되는 행정처분인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주택건설사업승인 등의 성격, 그리고 이 사건 사업부지를 둘러싼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사업부지에 대한 공매절차 당시 이미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주단의 파산관재인으로서 이 사건 사업부지에 대한 공매절차를 진행한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내부 문건을 보면, “인∙허가상 장애사유가 될 수 조합 해산 등 문제”는 사업부지 매수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과 “인허가관청으로서는 행정의 일관성 문제가 있으므로 기존 조합의 해산, 청산 또는 조합취소 등이 사전적으로 이루어져야 제3자의 사업계획을 승인할 수 있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피고 또는 H사 등이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주택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K시(장)에 의한 ① 국토계획법상의 지구단위계획구역지정 및 계획 수립 ② 주택법상의 사업계획승인 등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 사건 조합의 ‘존재’ 및 10년이 넘게 진행해온 이 사건 사업의 ‘역사’ 내지 ‘결과물’이 초래할 문제를 제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사전조치 없이는, 위 행정처분들이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낮았습니다. 즉 당시 이 사건 조합의 존재 등은 개발사업을 위해 필요한 행정처분들과 결합하여 다른 사업자에 의한 개발사업 진행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법적 장애’로 작용하였습니다.
한편, 위와 같은 당시의 상황을 다른 시각, 즉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ⅰ) 별도로 개개 토지소유자들과의 협상, 매매계약 체결 등을 위한 노력, 비용, 시간 소요 없이 이미 이 사건 조합의 사업진행 결과물로서 신탁된 사업부지 일체를 일거에 ⅱ) 그것도 시가 또는 감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취득할 수 있었던 새로운 사업자로서는 ⅲ) 만약 ‘이 사건 조합의 해산 및 사업 포기, 그리고 새로운 사업자에 의한 사업진행에 대한 동의’만 받아낼 수 있다면 ⅳ) 주택개발사업의 가장 큰 난관인 사업 인∙허가 역시 관할관청인 K시로부터 용이하게 획득할 수 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공매절차를 지켜보면서 이 사건 사업부지 취득 및 개발사업 진행 여부를 가늠하고 있던 피고와 같은 사업자들로서는 사업부지 매입비용 외에 별도의 추가비용을 들여서라도 ‘이 사건 조합의 해산 및 사업 포기, 그리고 새로운 사업자에 의한 사업진행에 대한 동의’ 등을 받아내어 자신이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계획을 세워볼 만했습니다.
그와 같은 계획에 베팅하여 ⅰ) (사업부지 취득 전에) ‘이 사건 조합의 해산 및 사업 포기, 새로운 사업자에 의한 사업진행에 대한 동의’ 등을 얻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자가 바로 피고와 H사 등이며, ⅱ) 위 동의 등을 얻기 위하여, 바꿔 말해 이 사건 조합의 ‘존재’ 등이 초래할 문제를 제거 또는 최소한 완화시킬 조치로서 체결된 것이 바로 이 사건 사업참여계약과 이 사건 사업권양도계약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 사업참여계약과 이 사건 사업권양도계약에는 모두 ① 이 사건 조합의 해산과 ② 사업(권) 포기 ③ 계약상대방인 새로운 사업자가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의 협력 등에 관한 사항이 들어가게 된 것이며, 그에 대한 일종의 대가로 일정한 정산방식에 의한 정산이익금(이 사건 사업참여계약의 경우) 또는 200억 원(이 사건 사업권양도계약의 경우)을 제공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두 계약은 체결 경위, 목적,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부여된 조합 및 조합원 등의 의무, 그 의무이행에 따른 조합 해산 등의 효과 등이 모두 완전히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와 관련해서는 ⅰ) 이 사건 사업참여계약 경우 이 사건 조합과 조합원 등이 명백히 ‘권리자’의 지위에 있지만, ⅱ) 이 사건 사업권양도계약에 의하면 이 사건 조합과 조합원 등은 ‘권리자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그저 피고의 시혜를 바라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원고는 이 사건 소송을 통하여 위와 같은 두 계약의 차이, 그리고 그로 인한 이 사건 조합 및 조합원 등의 피해에 대한 피고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본 글에는 필자의 견해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관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법리의 적용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성자: 박시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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