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가 법무관을 막 마치고 현재의 사무실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 맡았던 형사사건에 관한 글입니다. 오래전에 다른 곳에 작성했던 글인데, 본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옮겨왔습니다.
풋내기 변호사였던 저에게 '변호사의 역할'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던 사건이라, 기록 차원에서 여기 남겨 놓습니다.
1. 세월호 사건 발생과 수상구조함 '통영함'에 대한 논란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던 날 오전, 나는 사무실에서 서면작업 중이었고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사건을 인지하였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관련 기사와 영상을 찾아보던 그때만 해도 비록 전복되기는 하였지만 배는 상당 부분이 수면 위로 나와 있었고, 구조작업 역시 한창 진행 중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규모 인명피해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참담함 그 자체였다.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뒤 세월호와 함께 언론기사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있었다. “통영함”이었다. 해군의 신축 수상구조함 통영함이 음파탐지기 등 장비에 문제가 있어서 세월호 구조현장에 투입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기사들의 요지였다. 그 후 문제의 장비들은 방위사업청이 구매를 주관한 ‘관급장비’로 확인되었고, 자연스레 ‘납품비리’. ‘방산비리’ 등의 단어들이 언론기사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기사들은 “어선에나 쓰일 수준의 음파탐지기”, “2억 원짜리를 40억 원에 구매” 등 과장되고 자극적인 제목들을 달고 있었다.
2.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의 대대적 수사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며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말에 곧바로 호응하여 감사원, 군 검찰부, 기무사령부 등 관련기관과 함께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을 꾸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는 음파탐지기를 비롯하여 통영함에 납품된 장비뿐 아니라 또다른 함정인 소해함에 납품된 장비 등까지 전방위로 확대되었다.
당시 많은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았고 또 구속되었는데, 구속된 인물 중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단연코 현직 해군참모총장 H였다(정확히 말하면, 수사대상에 오르고 구속 한 달 전인 2015년 2월에 이미 압박을 받고 전역하였으므로 구속 당시 현직은 아니었다. 이하 편의상 그를 'H 총장'이라 칭함). 그는 ‘아덴만 여명 작전’의 지휘관으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이라 그의 구속은 더욱 화제가 되었다.
3. 합수단이 제기한 H 총장과 A 대령의 혐의
H 총장은 방위사업청이 2009년 문제의 통영함 음파탐지기에 대한 구매사업을 진행할 당시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 함정사업부장(해군 소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합수단이 제기한 혐의는, H 총장이 통영함에 탑재될 음파탐지기 구매사업 과정에서 H사의 음파탐지기가 가진 문제점을 알면서도 통영함 탑재 음파탐지기로 선정될 수 있도록 배임행위를 하고 또 그 일환으로 허위공문서도 작성하였다는 거였다.
합수단은 H 총장의 범행 동기를 ‘진급 욕심’으로 제시했다. 음파탐지기 구매사업 진행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정모 총장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정모 총장의 해사 동기생인 퇴역 군인 김모 씨가 고문으로 있던 K사의 음파탐지기가 통영함에 탑재할 음파탐지기로 선정될 수 있도록 힘써주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합수단이 내놓은 범행동기는 전혀 성립할 수 없지만,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정모 총장과 김모 씨가 실제로 가까운 사이인지’, ‘함정사업부장에 대한 근무평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에 대한 아무런 확인 없이 합수단의 주장을 받아쓰기에 바빴다.
한편, 비록 언론은 단신으로 처리하였지만, 통영함 음파탐지기 수사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요 인물이 H 총장보다 몇 개월 앞서 구속되었다. 그는 통영함 음파탐지기 구매사업 당시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 함정사업부 내 통합사업관리팀장(해군 대령)을 맡았던 인물로, 음파탐지기 구매사업을 총괄하면서 사업과정을 H 총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요청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미 2010년에 전역하여 구속 당시에는 일반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언론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기사에 실명이 기재된 H 총장과 달리, 기사들은 대부분 그를 “A 대령” 식으로 지칭하고 성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A 대령 역시 H 총장과 마찬가지로 ‘업무상 배임’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으로 기소되었다. 즉 그는 H 총장과 ‘공범’으로 기소되었다.
4. A 대령의 변호를 맡다
그리고 나는 A 대령의 형사재판 변호를 맡게 되었다.
검찰 수사기록을 복사해 와서 A 대령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을 처음 읽었을 때 몰려오던 막막함을 기억한다. 그의 피신조서에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들이 많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조서에 쓰인 그의 진술과 달리 구치소에서 만난 그는 통영함 음파탐지기 사업에 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구속 시점으로부터 약 6년 전 일이었다. 또한 음파탐지기는 그가 근무할 당시 방위사업청이 구매한 수많은 장비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으며, 그는 사업 진행과 관련하여 어떤 청탁이나 돈을 받은 사실도 없었다. 별다른 기억이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문제된 음파탐지기 구매는 '무기체계 구매사업'의 일환으로서 소요군이 요구하는 전력화 시기에 해당 장비를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 특성상 군사적·기술적ㆍ전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업무다. 이에 방위사업관리규정 등 관련 법령은 사업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각 절차마다 그 절차에서 필요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된 팀이나 외부 기관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권한을 분산시키고 있다.
통합사업관리팀장으로서 A 대령의 권한과 역할은 사업 전체를 총괄하면서 각 절차를 담당하는 기관이나 부서(예컨대 제안서 평가는 제안서평가팀, 구매 시험평가는 전평단 시험평가처 등)의 판단 또는 결정에 따라 다음 절차를 준비∙진행시키고, 그 과정에서 상관(함정사업부장)이나 관련위원회에 진행상황을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것이었다.
즉 '무기체계 구매사업'의 구조상 통합사업관리팀장의 주된 역할은 절차를 원활하게 진행시키는 것이었다. 구매할 장비의 요구성능 결정과 입찰된 장비의 요구성능 충족 여부 판단 등과 같은 전문적 영역은 그의 소관 사항이 아니었다.
5. 합수단의 수사와 A대령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
합수단은 A 대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해당 사업이 약 6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점과 피조사자들에 비하여 관련 자료와 정보의 접근에 유리하고 이 중 자신들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들만 취사선택하여 피조사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였다.
시간이 오래 지나 사업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던 A 대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피조사자들은 합수단의 베테랑 검사들이 제시하는 논리, 취사선택된 자료 및 다른 피조사자의 진술 등에 압도당하여 실제 자신의 기억상으로는 명확하지 않은 사항들을 합수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술해 주었다.
진술의 대부분은 사업 관련 절차적∙기술적 판단에 관한 사항들(예컨대 제안서 평가결과에서 조건부 충족의 처리방법, 합동참모회의에서 결정된 작전운용성능의 내용 등)이었지만, 일부는 다른 사실관계에 관한 진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관계에 관한 진술들 역시, A 대령 자신의 정확한 기억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업 진행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합수단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하에 거기에 맞추어 재구성된 기억에 기초하여 이뤄졌다.
6. A 대령은 왜 기억에도 없는 내용을 진술하였을까
언뜻,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진술을 하는가'하고 의문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놓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자신은 통상적으로 처리했던 거 같고 그래서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언론은 검찰이 '기소'하기도 전에 이미 사업 진행에 문제가 있었다고 단정적 보도를 쏟아내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벌백계를 강조한다.
구속된 상태로 죄수복을 입고 그 이름부터 중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사무실로 끌려간다. 음파탐지기의 성능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사관, 검사 들은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며 사업 진행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확신에 차서 지적하고 추궁한다.
'결과(음파탐지기의 성능)에 문제가 있으니 과정(구매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하여 반복된다. 뭐든 인정해야 비로소 이 지난한 과정이 끝날 거 같다. 이런 상황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거대한 힘과 흐름 앞에서 버티고 서 있으려면 많은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7. 변론의 방향을 잡다
재판 초기에는 A 대령은 물론이고 나 역시 사건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A 대령에게는 '범행의 동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음파탐지기를 공급한 K사의 중개인 김모 씨와 별다른 친분도 없었고, 청탁이나 돈을 받지도 않았다. 또한 그는 당시 이미 진급과 무관한 기수였고 사업 진행 얼마 뒤인 2010년에 전역하였기에, 합수단이 H 총장에게 적용하였던 진급과 관련한 동기는 애초에 적용될 여지가 없었다. 그가 전역 후 하던 일도 K사나 김모 씨와는 전혀 무관하였다.
실제로 검찰의 공소장에도 A 대령의 경우 범행의 동기가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범행의 동기가 없다는 점, 우리의 방어는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A 대령은 최초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죄로 기소되었는데, 재판을 받던 중 업무상 배임죄로 추가기소되었고 두 사건은 병합되었다. 병합 이후에는 같은 죄명으로 기소된 H 총장과 같이 재판을 받았다.
당시 1심에서 함께 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A 대령과 H 총장을 포함하여 총 5명이었다. A 대령과 H 총장을 제외한 3명 중 2명은 통영함 음파탐지기가 아닌 다른 장비와 관련하여 기소된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명은 통영함 음파탐지기를 포함한 여러 장비와 관련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었는데, 그가 바로 K사의 중개인(고문)이자 2009년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정모 총장의 해사 동기생으로 알려진 김모 씨였다. 그는 알선수재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들 3명은 1심에서 혐의 전부 또는 대부분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받았다(이들의 상소심 결과에 대해서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8.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다
사건이 병합되고 2015년 5월에 열린 첫 공판기일에 H 총장을 처음 보았다. 키가 매우 컸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20회 가까이 진행된 공판과정 동안 그는 대체로 말을 아꼈고 의연한 모습을 유지하였다.
법정의 방청석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공판이 계속될수록 취재를 나온 기자 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방청석은 거의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른 3명의 피고인에 대한 심리가 먼저 종결되어 그들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방청객 중에는 H 총장의 지인들이 특히 많았던 것으로 안다. 해사 동기나 선후배, 해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전현직 군인들이었다. 당시 나는 그 방청객들의 수와 총장의 운전병이었던 사람이 인터넷에 쓴 총장에 관한 일화를 보면서,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H 총장의 변호인은 법조계에서 뛰어난 형사변호로 유명한 변호사였다. 그의 변론과 증인신문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항상 사건의 본질에 가 닿았다. 그는 첫 공판기일에 함정사업부장에 대한 근무평정권이 해군참모총장에게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합수단이 제시한 범행동기를 반박하였다. 더불어 H 총장이 해군참모총장이 된 이후인 2013년 12월경에 이미 H 총장의 승인 하에 해군 스스로 음파탐지기의 성능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은 사실을 지적하였다. 정말로 비리를 저질렀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취지였다.
공판 과정 동안 우리 측과 H 총장 측은 전혀 접촉하거나 의사소통하지 않았다. 서로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은 탓에 우리 측도 조심스러웠지만, 특히 H 총장 및 그 변호인들은 우리가 상급자였던 총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를 취할 위험이 있다고 경계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경계와 달리, 당시 우리 측의 전략은 오히려 그들과 변론의 방향을 맞추고 그들의 검찰에 대한 방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 지원의 핵심은 H 총장에게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A 대령의 수사단계 진술을 공판과정에서 바로 잡는 데 있었다.
9. 재판의 하이라이트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공판 과정 거의 막바지에 열린 H 총장과 A 대령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었다.
앞에서 밝혔듯, A 대령은 합수단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들을 한 상태였고, 따라서 모두가 피고인 신문에서 이뤄질 A 대령의 진술에 주목하였다.
내가 공판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인 것도 피고인 신문이었다. A 대령이 수사과정에서 합수단에 압도당해서 하였던 잘못된 진술들을 일일이 바로잡아야 했다. 당연히 단순히 진술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합리적인 근거에 바탕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신문기일을 앞두고 구치소 접견실에서 A 대령과 피고인 신문을 오랜 시간 준비했다.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시점에는 A 대령도 심적으로 안정감을 찾은 상태였고 수사기록 및 자료들을 꼼꼼히 검토하여 사건에 대한 이해도 높아져 있었다.
신문을 준비하면서 그는 여러 차례 나에게 H 총장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였다. 자신의 수사단계 진술이 본의 아니게 H 총장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한 거 같아 죄송하다는 취지였다.
10. 드디어 피고인 신문기일이 열렸다.
다행히 신문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실제로 1심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 신문 때 A 대령이 한 진술이 많이 원용되어 있으며, 왜 그 진술을 수사과정에서의 진술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보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A 대령은 무척 잘해주었다. 검사들의 날카로운 신문에도 차분하고 당당히 맞섰다. 신문기일에 검찰은 많이 당황한 듯 보였고, 심지어 H 총장 측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오후에 시작한 신문은 주신문에 반대신문, 재주신문으로 계속하여 이어졌다. A 대령과 H 총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모두 마치고 법정을 나왔을 때는 밤 12시가 넘어 있었다. 법원 근처의 편의점에서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지만 재판 과정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서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11. '무죄' 판결의 선고
피고인 신문 후 몇 차례 공판기일이 더 열렸고, 나는 변론요지서를 제출하였다.
2015. 10. 5. 드디어 선고기일이 열렸다. 법정은 기자와 피고인들의 가족, 지인들로 가득 찼다. 방청석이 다 찼음은 물론 서서 방청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법정 안으로 들어가기조차 어려웠다. 다른 피고인 3명에 대한 선고가 먼저 이뤄졌다. 그들은 ‘유죄’였다. 그리고 이어서 H 총장과 내 의뢰인 A 대령에 대한 선고가 이어졌다.
‘무죄’였다.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방청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법정에서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고, 그 이후로도 보지 못했다.
합수단은 바로 항소하였다. 그런데 사무실 사정으로 A 대령의 항소심은 다른 로펌에서 맡게 되었다. 당시 나는 따로 A 대령과 그의 부인에게 미안함을 표하였다.
다행히 항소심과 상고심의 판단도 1심과 같았고, A 대령과 H 총장 모두 무죄가 확정되었다. 무죄가 확정되던 날 A 대령으로부터 '고마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야말로, 경력도 짧았고 나이도 자신보다 훨씬 어렸던 나를 재판 진행 내내 믿어 주었던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가 이제는 평안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족 같지만, 끝으로 통영함이 세월호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몇 자 적고자 한다.
당시 통영함이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음파탐지기의 성능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해군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통영함을 정식 인수받지 않은 사유 중 하나가 음파탐지기의 성능 문제인 것은 맞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던 것으로 안다. 애초에 음파탐지기는 세월호 구조 현장에서 사용될 장비도 아니었다. 이는 음파탐지기가 어떤 일을 하는 장비인지만 떠올려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통영함의 세월호 현장 투입은 통영함이 보유한 ‘잠수 감압 체임버’(잠수부의 잠수병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잠수 캡슐) 때문에 고려되었다. 현장엔 이미 청해진함을 비롯해 체임버를 갖춘 함정이 3대나 배치되어 있었지만, 다른 함정의 체임버가 고장날 경우를 대비해 예비적으로 통영함 투입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해군은 ‘아직 정식으로 해군이 인수하지 않아 승조원 임무수행 훈련 한 번 해보지 않은 통영함을 무리하게 투입할 경우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 H 총장이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도 이와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H 총장이 지시한 통영함 출동을 누군가가 막아 세월호 구조를 방해하였다'는 이야기들이 인터넷상에 일부 떠돌고 있다. 이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하는 것 같다. 사족을 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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