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ㅣ소송

사망보험금 면책사유 '자살'(고의적 자해)의 구체적 판단기준 정리

박시완 변호사 2026. 9. 14. 17:47

 

1. 들어가며

 

필자는 2020년부터 현재까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보험분야)'으로서 분쟁조정위원회에 계류된 여러 보험분쟁 건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분쟁 사례들 중에는 생명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의 '자살'로 인한 사망이 문제되어 보험금 지급여부가 다퉈진 사례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본 글에서는 당시 의견 제출 과정에서 정리하였던 관련 판례들을 안내 드리고자 합니다. 

 


 

2. 대법원의 기본적 입장

 

보험계약의 보통약관에서 '자살' 등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회사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회사가 그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위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습니다(대법원 2005다70540, 70557 판결). 

​대법원은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고의적 자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즉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경우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사고'에 해당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17다281367 판결).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대법원 2009다97772 판결 등).

①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②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③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④ 진행 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⑤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과 자살 무렵의 자살자의 행태
⑥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⑦ 기타 자살의 동기
⑧ 그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

 


 

3. 구체적 판단요소들

 

몇 가지 구체적 판단요소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가. 의학적 소견

대법원은 “주요우울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에 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이 확립되어 있으므로, 피보험자가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였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되었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고, 만약 그러한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ㆍ전문적 자료에 기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대법원 2017다281367) 피보험자의 상태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 정신질환의 존재 및 정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그 정도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피보험자에게 주요우울장애(대법원 2017다281367 판결) 혹은 중증 우울에피소드(대법원 2017다226537 판결, 대법원 2013다205457, 2013다20546 판결)가 있거나, 망상, 환청 증상, 정신분열증(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5다5378 판결)이 있는 경우에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이며, 반면 경도의 우울장애, 기분부전증(대법원 2005다70540, 2005다70557 판결)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울장애와 관련하여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는 우울에피소드를 경도(Mild, 코드:F32.0), 중등도(Moderate, 코드:F32.1), 중증(Severe, 코드:F32.2 및 F32.3)으로 분류하고 있는바, 법원은 주로 자살자가 F32.2이상으로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대법원 2017다226537 판결 등)

한편, 중등도(Moderate, 코드:F32.1) 우울장애와 관련해서는, “환청 및 환각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고도의 우울증 상태까지는 아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자살 직전에는 중등도의 우울증 상태였으며 이러한 우울증이 자살에 이르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판례가 존재합니다(서울고등법원 2013나2031173).

​위와 같이 법원이 정신장애의 존재 및 정도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음은 분명하나 이를 절대시하거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고등법원은, 1) 정신질환상태에서 고의로 자신을 해친(자살한) 경우’란 자살자가 평소의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자살의 징후와 준비과정을 거쳐 자살하는 경우만으로 제한적으로 볼 것은 아니며, 2) 위의 정신질환상태에는 외인성(外因性), 내인성(內因性) 외에도 심인성(心因性) 정신질환, 즉 명확한 신체요인 또는 뇌의 기질적인 변화 없이 강렬한 심리적ㆍ정신적 원인이 작용하여 발생하는 병적인 정신상태를 포함하고, 3) 협의의 정신병, 신경병 외에 인격장애나 주취명정상태로 인한 심신미약상태, 고도의 급성스트레스반응 등 일시적 정신질환상태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04나72688 판결).

다. 사망(자살) 즈음 피보험자의 상태 및 행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한 것인지의 여부 판단과 관련하여 대법원이 판시한 판단 요소들 중에는 사망(자살) 무렵의 피보험자(자살자)의 상태 및 행태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자살자가 격렬한 부부싸움과 같은 상황 하에서의 ‘극도의 흥분되고 불안한 정신적 공황상태’나(대법원 2005다49713 판결), ‘음주로 인한 병적인 명정’상태(판례 사안은 성인 2명이서 1.8리터 들이 소주 한 병 반과 맥주 두 병을 나누어 마시고 만취하여 사망자의 사망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78%로 추정되는 경우입니다)[대법원 2007다76696 판결(서울고등법원 2006나74497 판결)]에 있었던 경우 자살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음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반면에 대법원은 '사망자가 당일 있었던 교통사고 뒤 자동차 보험회사에 스스로 전화를 하여 사고경위 등을 자세히 진술하고 집으로 스스로 돌아오는 등으로 사망 6시간 전까지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한 점'을 근거로, 해당 사망자가 '정신질환에 의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지 아니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8다236715 판결). 사망자가 사망과 가까운 시점에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 경우에는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라. 유서 등의 존부

 

대법원은 정신장애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한 것인지의 여부 판단과 관련하여, 유서의 작성, 사망 전 전화 통화,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의 발송 사실 등의 존부를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즉 유서의 존재나 사망 전 전화통화 사실 여부, 자살을 암시하는 말 혹은 행동의 유무를 통하여 피보험자가 본인의 생명을 끊음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절단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1)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짐을 전부 없애고,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도 삭제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손윗 동서에게 남긴 사안(대법원 2009다97772 판결), 2) 친구 6명에게 카카오톡으로 ‘7시에는 나 이 세상에 없어. 부사관 한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는 등의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안(대법원 2018다239837 판결) 등에서 법원은 '자살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사망한 것'으로, 바꿔 말해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한 것이 아니다고 판단하여,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책임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서 또는 그에 준하는 메시지가 존재한다고 하여 언제나 보험회사의 면책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극심한 우울상태에서는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판단력이 극심히 떨어져도 유서 작성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녀의 신변을 부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아, 유서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17다226537 판결).

​결국 유서의 존재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에 더하여 다음의 점들까지 함께 고려하여 피보험자가 자살 당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하였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별하게 됩니다. 

① 유서의 분량
② 유서의 내용에 장례식과 같은 사후 의례나 유품의 정리 등과 관련한 당부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③ 피보험자가 삶을 회고하면서 유서를 작성하였는지 여부 
④ 유서에 특정인을 청자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 그러한 상대방이 여러 명인지 여부
⑤ 문장의 완성 정도
⑥ 유서 작성 당시 스스로의 행위를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
⑦ 유서가 수기인 경우 그 정서(正書)의 정도
⑧ 유서가 발견하기 쉬운 위치에 놓여 있었는지 여부

 


 

4. 나가며  

 

본 글에서 정리하여 알려 드린 바와 같이,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해당 피보험자가 과거 우울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앓았던 병력 유무만을 근거로 할 것은 아닙니다. 해당 정신질환의 정도 등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7다281367 판결)에서 제시된 다양한 판단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특히 자살 무렵의 피보험자의 행태와 구체적인 상태, 주위상황을 확인하여 정신질환 등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에는 필자의 견해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관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법리의 적용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성자: 박시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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