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본 글에서는 중소기업에서 종종 문제되는 대표이사 권한의 '포괄적 위임'의 효력과 형사상 문제 등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특히 이는 '오너기업'에서 오너가 등기부상 대표가 아닌 경우에 많이 문제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표권(대표이사 권한)의 포괄 위임은 원칙적으로 무효이며, 이는 계약체결 등 대표행위의 효력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형사책임(문서 범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2. 대표권 포괄 위임의 효력
'회사'와 '(대표)이사'의 법률관계는 '위임관계'입니다. 즉 근로기준법상의 '근로계약' 관계가 아닙니다. 상법 제382조 제2항은 "회사의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하여 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위임관계'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합니다(민법 제680조).
이러한 위임관계는 당사자들 사이의 '신임관계'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수임인은 원칙적으로 위임받은 사무를 '스스로' 처리해야 하며, 제3자로 하여금 자기 대신 처리하게 할 수 없습니다(민법 제682조). 따라서 회사와 '위임관계'에 있는 대표이사가 '수임인'으로서 자신이 가지는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재)위임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이는 위임관계에서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법리입니다.
대법원(96다14005 판결 등) 역시 이미 오래전에,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대표이사로서의 권한을 제3자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여 그 제3자로 하여금 회사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것은 회사의 이익을 해하는 행위로서 대표이사 제도를 둔 취지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그 제3자가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예컨대 '최대주주')이어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결국 대표이사가 자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그러한 위임행위는 법적으로 '무효'입니다.
3. 포괄적 위임을 받은 자가 한 대외행위의 효력: '무권대리'로서 무효
그렇다면 그러한 무효의 위임을 받은 자가 회사 명의로 한 대외적 법률행위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
대법원(96다14005 판결 등)은 별도의 개별적·구체적 위임 또는 승낙을 받지 않는 한, 대표이사로부터 포괄적 권한 위임을 받은 사람이 회사 이름으로 한 법률행위는 '무권대리행위'로서 '무효'라고 봅니다.
이러한 대표권 또는 이사 권한의 포괄적 위임과 관련한 법률관계는 주식회사뿐 아니라 '민법상의 법인'이나 '비법인사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법상 법인(사단법인)'의 경우, 민법 제62조에서 “이사는 정관 또는 총회의 결의로 금지하지 아니한 사항에 한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위를 대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단법인의 임원은 그 직무범위에 속하는 사항들 중 구체적인 사항을 특정하여 대리 또는 위임할 수 있을 뿐 추상적∙포괄적 위임은 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비법인사단'도 같습니다. 대법원(2008다15438 판결)은, 비법인사단에 대하여는 사단법인에 관한 민법 규정 가운데 법인격을 전제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추적용하여야 한다면서, 민법 제62조에 비추어 보면 비법인사단의 대표자는 정관 또는 총회의 결의로 금지하지 아니한 사항에 한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위를 대리하게 할 수 있을 뿐 비법인사단의 제반 업무처리를 포괄적으로 위임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따라서 비법인사단 대표자가 행한 업무의 포괄적 위임과 그에 따른 포괄적 수임인의 대행행위는 민법 제62조를 위반한 것이어서 비법인사단에 대하여 그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4. '선의'의 거래상대방 보호(회사의 외관책임)
위와 같이 대표권의 포괄위임은 '무효'이고, 무효의 포괄적 위임을 받은 수임인이 회사(또는 사단법인이나 비법인사단) 이름으로 한 법률행위 역시 '무권대리'로서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 민법 제125조·제126조의 표현대리와 같은 외관책임 법리가 적용되어 거래상대방 등 제3자는 보호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식회사'에서 이뤄진 대표권의 포괄위임 사안에 대해서는 실무상 거래상대방 보호와 관련하여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 법리가 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상법 제395조 |
|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기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한 이사의 행위에 대하여는 그 이사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없는 경우에도 회사는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 그 책임을 진다. |
대법원(97다34709 판결 등)은 '이사'의 자격이 없는 자라 하더라도 회사가 그에게 대표이사와 같은 외관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면 상법 제395조가 유추적용될 수 있고, 그 사람이 자기 이름이 아니라 진정한 대표이사의 이름을 사용하여 행위한 경우에도 상법 제395조가 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라, 대표권의 포괄위임 사안에서도 동조의 활용 가능성은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한편, 상법 제395조의 적용을 위하여 제3자의 선의 이외에 '무과실'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까지 보호되지는 않습니다. 중대한 과실 여부는 거래 당시의 구체적 사정, 상대방의 경험과 지위, 거래의 이례성, 권한 흠결을 의심할 객관적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그리 중대한 과실의 존재에 대해서는 선의를 주장하는 제3자가 아니라 '회사'가 그 입증책임을 부담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대표사례를 소개합니다. 서울고등법원 2021. 11. 25. 선고 2021나2019574 판결 사례입니다.
해당 사례는 대표이사 A가 배우자인 B에게 회사 대표이사로서의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하였고, B가 대표이사 명의 및 대표이사 인감을 사용하여 연대보증약정을 체결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B에게 해당 연대보증약정에 관한 개별적·구체적 위임이 없었으므로 이는 무권대리행위에 해당하지만, ① 대표이사가 수임자에게 대표이사 인감을 맡긴 점 ② 수임자가 대표이사 사무실을 사용한 점 ③ 회사 직원들이 수임자를 ‘대표’라고 부르는 것을 대표이사가 용인한 점 ④ 수임자가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자로 활동한 점 ⑤ 거래상대방이 수임자를 회사의 소유자이자 대표 사장으로 소개받은 점 등을 이유로 상법 제395조에 따라 연대보증약정의 상대방에 대한 회사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참고로 표현대표이사가 자기의 명칭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른 대표이사의 명칭을 사용하여 행위를 한 경우, 즉 '대표권 대행'의 경우 제3자의 선의나 중과실의 대상은 '표현대표이사의 대표권 존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표이사를 대행하여 법률행위를 할 권한이 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5. 형사적 문제
대표이사의 대표권 행사는 '문서'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표권의 포괄적 위임은 형사적으로 문서 범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별도의 횡령·배임행위가 없더라도, 회사 이름의 문서 작성행위 자체만으로도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2006도2016 판결)은 "포괄 위임을 받은 사람이 주식회사 명의로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권한 없는 문서 작성으로서 자격모용사문서작성 또는 사문서위조에 해당할 수 있고, 대표이사로부터 개별적·구체적으로 주식회사 명의 문서 작성에 관하여 위임 또는 승낙을 받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적법하게 주식회사 명의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을 뿐이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격모용사문서작성'과 '사문서위조'는 어떻게 구분될까? (참고로 두 범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법정형이 같습니다.)
'주식회사 탑건'의 대표이사 A가 B에게 대표이사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하였고, 권한의 포괄위임을 받은 B가 ‘주식회사 탑건’ 명의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가정할 때, 이론적으로 단순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주식회사 탑건 대표이사 B”라고 표시하면 → 자격모용사문서작성 가능성
② “주식회사 탑건 대표이사 A”라고 표시하면 → 사문서위조 가능성
이와 관련하여 ①의 경우 B가 '주식회사 탑건'의 대표이사가 아니므로 대표이사로 표시한 건 '자격모용사문서작성'이 될 수 있다고 보이지만, ②의 경우 여하튼 B는 대표이사 A로부터 동의를 받아 'A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인데 왜 '사문서위조'가 성립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계약서의 명의인은 대표이사 'A'가 아니라 '주식회사 탑건'입니다. '주식회사 탑건'은 자기 명의 문서를 작성할 권한을 'A'에게 준 것이지 'B'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비록 문서에는 작성자가 대표이사 A로 있지만) 이 문서를 실제 작성한 자는 'A'가 아니라 바로 'B'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B'가 '주식회사 탑건' 이름의 해당 계약서를 작성한 행위는 '정당한 작성권한 없는 자의 사문서 작성행위'로 사문서위조죄가 성립합니다(인천지방법원 2021고정2428 판결 등 참고). 즉 문서 작성행위가 위조에 해당하는지는 그 작성자가 주식회사 명의의 문서를 적법하게 작성할 권한이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문서에 대표이사로 표시되어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 문서 작성에 관하여 위임 또는 승낙을 받았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위 ①과 ② 어느 경우든 회사가 허용하지 않는 문서작성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6. 나가며
대표권의 포괄위임은 편해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무효가 될 수 있고, 그 위임을 받은 사람이 회사(또는 단체) 명의로 계약·문서를 작성하면 무권대리로서 그 행위 민사적 효력이 문제될 뿐 아니라 문서 관련 형사책임까지 문제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본 글에는 필자의 견해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관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법리의 적용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성자: 박시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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