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본 글에서는 필자의 사무실에서 수행하였던 상장사 A사의 사채권자집회 사안에 기초하여, 주식회사의 사채권자집회에서 주로 문제되는 '조기상환청구권 삭제'에 관한 쟁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발행회사의 유동성 문제로 인한 사채권자집회 결의의 핵심 '조기상환청구권 삭제'
사채 발행 회사가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회사의 '유동성' 문제 해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현재 회사에 충분한 현금 또는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상황이라 사채의 원리금을 변제할 여력이 없을 때 그 지급을 유예할 목적으로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채권자집회 결의는 그 종류의 사채를 가진 모든 사채권자에게 효력이 있습니다(상법 제498조 제2항). 따라서 사채권자집회에서 '사채 원리금 지급 유예'에 관한 안건에 대하여 가결이 이뤄지고 법원의 인가를 받으면, 안건에 찬성한 사채권자는 물론이고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채권자, 그리고 심지어 안건에 반대한 사채권자에 대해서도 지급 유예의 효과가 발생합니다.
즉 회사가 발행한 같은 종류(예컨대 '제2회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신주인수권부사채')의 모든 사채에 대하여 지급 유예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가 사채권자집회 결의를 통하여 사채의 '만기'만 연기(변경)하면 해당 사채로 인한 '유동성'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조기상환청구권' 때문입니다.
시중에서 발행하는 거의 모든 회사채에는 사채권자에게 '조기상환청구권'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조기상환청구권(put option)이란, 사채권자가 사채의 '만기' 전에 회사에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시장이나 발행회사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 사채권자들은 '만기' 전에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사채권자집회 결의를 통해 전체 사채의 '만기'를 연기(변경)하더라도 조기상환청구권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회사로서는 조기상환 청구기간이 도래할 때마다 조기상환을 요구하는 사채액이 어느 정도 될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고, 예측가능한 유동성 계획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최악의 경우 사채권자(들)의 조기상환청구에 응하지 못하는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하여 사채 원리금의 지급을 유예하기 위하여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하는 경우 반드시 결의 사항에 '조기상환청구권 삭제(소멸)'를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아직 행사하지 않은 조기상환청구권'뿐 아니라 '이미 행사하였으나 아직 이행(변제)되지 않은 조기상환청구권'도 삭제(소멸)시킬 수 있을까? 필자가 자문했던 A사 사안에서 예탁결제원의 담당자도 같은 의문을 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들 사이에서 일정한 권리행사나 이미 발생한 법률효과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하는 합의는 가능합니다. 따라서 사채권자와 회사 사이에서 이미 행사한 조기상환청구권 및 그 행사의 효과를 소급하여 소멸시키는, 즉 없었던 것으로 하는 합의 역시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회사채의 경우 그 '합의'를 각 사채권자와 회사가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법에 따라 단체법적 행위인 사채권자집 집회 결의를 통해 하는 것뿐입니다.
실제 필자가 자문한 A사 사채권자집회에서도 이미 행사한 조기상환청구권을 삭제하고 그 행사의 효과를 소급하여 소멸시키는 의안에 대한 결의가 이뤄졌고, 법원으로부터 인가 역시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회사의 사채권자들에 대한 유인(誘因) 제공
이와 관련해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만기를 연기하고 조기상환청구권을 삭제하는 것은 사채권자에게 불리하고 채무자인 사채발행 회사에만 유리한 내용인데, 사채권자들이 왜 이런 불리한 내용의 결의를 하는가?"
그 이유는 회사가 사업계속, 신규투자 유치 등을 통해 유동성 문제를 조만간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면, 사채권자들 입장에서도 원래대로의 사채권 행사를 통하여 대규모 디폴트 상태를 만들어 회사를 도산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보다는, 일단 권리행사를 유예하여 갱생의 기회를 주고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사채 원리금을 온전히 변제받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경우 회사가 단순히 '양보해 달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채권자들의 양보에 대한 유인, 즉 '보상'을 준비하고 이 역시 사채권자집회 결의 사항에 포함시킵니다. 예컨대 이자율 상향, 사채원금 일부 상환, 담보제공 등입니다.
본 글에는 필자의 견해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관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법리의 적용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성자: 박시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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